여차저차하여 난임휴직을 쓰기로 했다. 스케줄에 맞춰 근무해야 하는 환경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 특히 상사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만 하는 일들이 생기는 게 영 마음이 불폈했다. 만약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차라리 업무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완전히 제외시켜 버리자는 것이 짝꿍과 나 결정이었다(덕분에 요즘은 돈 걱정이 늘었다;). 나는 꽤나 예민한 성격이어서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정도가 높다. 짝꿍도 그걸 잘 알기에 숙고 끝에 내려 준 결정이다. 그래서 고맙지...♥
한편으로 사실 '난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입 밖에 내기까지의 순간이 굉장히 어려웠다.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그렇게 살고 싶었지만… 마치 내가 내 스스로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꼴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눈이 더 무서웠던 걸까. 그런데 막상 털어내고 나니 그 다음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아주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처음 무거운? 무서운? 마음을 안고 방문한 난임병원은 그저 여느 병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직원들 몸에는 친절함이 베어있었다. 물론 그것이 사무적인 친절함이란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마저도 없으면 아마 병원 방문객들의 마음은 더 무거워질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한 탓에 혈압이 너무 높게 찍힌 것은 안 비밀..
이전에 집 근처 산부인과에서 대여섯번정도 배란유도제(페마라)를 처방받아 임신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덕분에 그곳에서 받았던 몇 가지 검사결과들을 가지고 간 터라 난임병원에서의 검사는 간소화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혈액채취 11통은… 무섭더라. 통에 붙일 라벨이 드륵드륵 하며 인쇄되는데 그 소리가 끝이 없었다. 놀란 눈으로 프린터기를 봤더니 간호사 분이 멋쩍게 웃으면서 "좀 많죠? ㅎㅎ 그래도 조금씩만 뽑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하셨다. 그 와중에 인쇄된 라벨 개수를 센 나도 징그럽다.
검사결과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짝꿍이나 나나 술, 담배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라 관련한 문제는 없었고, 나는 다낭성난소때문에 AMH가 문제될 것이란 게 뻔했다. 몇 해전 보건소를 통해 받았던 산전검사에서는 24.38을 기록했었다. 내 나이에 비하면 너무도 높은 수치다. 이번 검사 때는 다행히 AMH 11.2였다. 내 나이대 평균 AMH가 2점 대 라는데 그저 웃음만 나오는 수치다. 담당의는 내가 남성호르몬 수치도 조금 높은 편이고, 다낭성난소 때문에 당뇨나 심혈관계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으니 주기적으로 필히 운동할 것과 건강검진을 꾸준히 챙겨서 관리할 것을 요구했다. 신기하게도 따로 챙기지 않아도 될 만큼 비타민D는 충분하다 했다. 희한한 몸이다.
약간의 상담을 거쳐 인공수정보다 시험관을 바로 해보자는 것이 담당의의 의견이었다. 사실 내 생각도 그랬다. 인공수정의 임신 가능성이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이왕 결정한 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다. 대신 내 경우에는 난자채취 후 복수가 찰 가능성이 꽤나 높아서 곧장 이식이 불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인데도 걱정이 되었다. 시간이 늦춰져서 혹여나 주어진 기간 동안 최대한의 기회를 사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신경쓰였다. 그래도 뭐 어쩌겠나… 해봐야 아는 거지.
그렇게 진단서를 발급받고, 회사에 휴직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고, 걱정했던 시간이 무색하게 결재는 순식간에 완료됐다. 어안이 벙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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