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사가 무섭다는 짝꿍에게 주사를 놔달라고 해도 그는 분명 "아이고 어떡해" 라며 안절부절못할 게 뻔했다. 반면에 나는 내가 생각해도 무덤덤하게 주사를 놓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으니까, 정말로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13시 58분이 되어 다시 한번 유튜브를 보며 주사 놓는 방법을 복습했다. 아무리 어제 교육을 받았다지만 이놈의 머리는 나이가 들어 그런지 내 스스로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할 만큼 덤벙대기 때문이다.
14시가 되어 떨리는 손으로 알코올솜으로 슥- 슥-주삿바늘을 펜에 꽂아 넣고, 주사액 안에 공기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처방받은 용량만큼 조정한 뒤 목표한 위치에 주사를 놓았다.
상상? 걱정? 했던 것보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런데 한 시간쯤 지나니 머리, 정수리 부근이 은근히 아파왔다. 오늘 내내 한 것도 없었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무기력감이었다. 바닥에 누워있자니 머리는 계속 아팠다. TV도 끄고, 휴대폰도 내려놨다. 그때 침대로 가서 차라리 잠을 잘 걸. 버티고 버티다 결국 5시쯤 침대로 옮겨가 잠이 들었다. 그러고는 세 시간을 내리 자버렸다.
짝꿍이 퇴근하고 와서는 한마디 얹었다. "주사 맞는다고 나름 긴장했던 거 아니야?"
맞다. 말은 무덤덤하게 주사 잘 놨다고 했지만, 혼자 있는 동안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항상 사서 걱정하는 타입이라 문제인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일이 닥치기 전까지는 아주 세상이 종말 할 것처럼 걱정하는데 막상 일이 닥치면 걱정했던 것만큼의 일이 아님을 깨닫고 머쓱해한다. 말인즉슨 아침 내내 긴장했던 것 같다는 말이다. 거기에 주사도 맞았으니 어쩌면 주사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담당의도 두통이나 무기력감, 약간의 미열 정도를 부작용으로 알려주었고, 내 증상도 그와 비슷했으니까.
나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 그저 그러기를 바랐던 마음이었던 거 같다. 괜찮고 싶었던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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