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한 철을 힘겹게 버텨내다 짝꿍과 나, 모두 스러졌다.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둘 다 무릎 꿇을 수밖에 없었다.
힘겹게 얻어낸 짧은 휴가는 사실 휴가라기보다는 요양에 가까울 만큼 우리 둘의 상태는 거지 같았다. 그저 며칠 간의 여유였을 뿐. 그런데 그 며칠이 구국의 결단이 내려지는 기간이 될 줄이야…
나와 짝꿍은 당장의 즐거움이나 쾌락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우리의 소비패턴은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입에 맞추어 형성해 왔다. 나름대로 흥청망청 살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덕분에 청약에도 당첨되어 내년에는 서울은 아니지만 '진짜 우리 집'으로 이사도 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서울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이 이 선택의 계기가 된 건 사실이다.
서울에 있을 때, 시도해 보자.
그동안 마냥 전전긍긍하기만 했던 자연임신 욕심을 내려놓고, 의술의 힘을 빌리기로 짝꿍과 결의했다. 지금까지 예닐곱 번의 시도가 있었고, 단 한 번도 임신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던 터라 어느 정도는 마음먹고 있었다. '우리는 자연적으로 임신되기는 힘들겠구나.' 하고. 단지 그걸 인정하기까지가 너무 오래 걸렸다. 생리가 불규칙하기 때문에 때맞춰 병원 예약하는 것이 번거로워서라든가 단순히 병원에 가서 대기하는 것이 번거로워서 라는 건 모두가 핑계였다. 사실은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도를 해보시는 걸 추천드려요.'라고 의사 선생님이 말할까 봐. 나는 그것이 더 무서웠다. 공식적으로 내가 난임인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한켠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도 말이다.
길고, 깊은 대화 속에서 어렵게 인정하고 결정하고 나니 그 뒤의 일은 너무나도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마치 내가 난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고,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다. 참으로 이상하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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