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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임일기

[난임일기] 시험관 자가주사 10일차_241001

by ㅋiㅋ! 2024. 11. 17.

 

시험관 자가주사 10일차

 
지금껏 맞은 주사를 모아봤다… 가니레버 한 개가 부족하다. 병원에서 맞았기 때문에.
 
다른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시간이 잘 가서 금방 새벽 1시가 되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기침을 계속하고, 가래도 좀 있는 몸상태였다(지금에서야 밝히지만 이건 천식 증상이었다). 그래서 집을 나온김에 병원 한 번 더 가자는 마음으로 집 앞 내과에도 들렀었다. 이런 저런 일 때문에 피곤했는지 안 그래도 졸려죽겠는데 시간까지 안 가니 죽을 맛이었다.
 
요즘 흥행하고 있는 흑백요리사와 관련한 유튜브를 이것저것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짝꿍이 옆에서 지키고 있는 게 부담스럽고 민망해서 방에 들어가 자라고 했지만 짝꿍은 기어이 내 옆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마저도 민망하고 어색해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다. 짝꿍은 "괜찮아."라며 고집을 피우다 결국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01시 28분 쯤 되어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냉장고에 넣어둔 주사를 꺼냈다. 알코올솜으로 쓱싹쓱싹 배를 닦다 무심코 배를 내려다 봤는데 어째서인지 병원에서 주사맞은 곳들은 죄다 멍이 들어있었다. 주사를 맞고나서 지혈한답시고 알코올솜으로 문질러서였을까? 배에 퍼렇게 들어있는 멍을 보니 그런 말들이 생각나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서 임신을 해야 하는가" 거기에 데카펩틸이 유독 아프다는 글들이 생각났다. 고날에프는 새발의 피였다며, 주사바늘도 두꺼운 데카펩틸 맞다가 울기도 했다며..

마음을 추스리고 주사를 놓으려 살을 한껏 움켜쥐었는데... 웬걸? 내 눈에 주사바늘 두꺼운 것만 강조되어 보이는 것이 아닌가. 거짓말 조금 보태서 손가락 하나 정도되는 줄 알았다. 역시 주사 후기글 같은 건 찾아보지 말걸 하는 생각만 들었다.

오른쪽 배에 두 개, 왼쪽 배에 두 개. 마치 의례를 지내 듯 천천히 주사를 놓았다. 차례차례 다 놓고나니 32분 쯤 되었던 것 같다. 첫 주사는 생각보다 괜찮았지만 마지막 주사는 바늘이 살을 뚫는 순간부터 유독 아파서 이게 왜 이러나 싶었다. 통증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정말 주사 맞다가 울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마지막 주사바늘을 제거하고 나니 아팠 다. 아렸다가 더 맞는 표현인가. 아팠다. 내가 주사를 잘못놓은건가? 내가 진짜 이렇게 주사맞고 아파하면서까지 임신을 해야하는가 생각이 절로 났다. 옆에서 지켜주던 짝꿍이 말없이 토닥여줬다. 고맙다는 마음과 동시에, 나만 이렇게 고생해야 한다는 억울함이 밀려왔다. 순간적으로 여자로 태어난 게 원망스러웠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기도 하지. 아프다. 피곤하다. 얼른 모든 과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