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채취 후기
10월 1일 새벽 1시 30분. 데카펩틸 네 개 맞은 후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틀을 기다렸다. 짝꿍에게는 아닌 척 했지만 속으로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저녁식사 후 처방받았던 항생제를 챙겨먹고, 물을 왕창 마시고 나서 밤 12시 이후로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난포가 터지기 직전이라 그런지 묵직하고, 묵직했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할 만큼 묵직했다.
긴장되는 마음에도 잠은 잘 잤다. 어쩌면 '잘 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불안한 마음을 짝꿍에게 털어놓기도 했다. 데카펩틸을 맞으면 36시간 이내에 터진다고 하지만 그보다 일찍 터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것 아니냐며. 얼토당토않게도 병원에 가서 난자채취를 시작했는데 난포들이 모두 다 터져버려서 막상 채취할 난자가 없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의 70%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 일이라고 했던가. 쓸데없는 걱정을 머릿속에서 털어내려 애쓰다 보니 나와 짝꿍은 병원 내 수술상담실에 도착해 있었다. 채취 직전까지 물도, 밥도 아무것도 섭취하지 못하는 금식이었기 때문에 조금 진이 빠졌다. 이 날은 어째서인지 도로가 꽉 막혀, 넉넉한 시간을 두고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빠듯하게 병원에 도착했다. 교통체증에 의한 분노 덕분에 어이없는 상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시간은 줄어들어서 고마웠다고 해야 하나. 현실 감각을 유지한 채로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술상담실에 도착하자마자 내 이름이 불렸고, 몇 가지 확인을 거쳐 손목에 팔찌가 채워졌다. 데카펩틸 주사를 언제 맞았는지도 한 번 더 확인했다. 이제 이름이 불리면, 수술실로 불려갈 터였다.
10분 정도 기다리니 수술 대기실에서 나를 불렀다. 옷을 탈의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약간의 텐션이라도 높이고 싶다는 듯이 벽걸이 TV에서 런닝맨이 송출되고 있었다. 내 팔에 수액주사가 놓이니 더 긴장이 되어 TV속에서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더 않았다. 정말이지 곧 몇 분안에 수술실로 들어갈 터였다.
"ㅋIㅋI님 저 따라 들어가실게요."
지금껏 수면마취나 전신마취를 해본적이 없던 내가 직접 수술실의 풍경을 직접 마주하니 당황스러웠다. 게다가 수술실을 한바퀴 채 돌아보기도 전에 침상에 누워야 했다. 침상에 누워 이리저리 몸을 조정하다 보니 담당의가 내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다가왔다. 순간, 내 모든 불안이 사라졌다. 곧이어 마취과 의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숨을 크게 들이쉬세요"
숨을 한 번 쉬었다. 한 번 더 쉬었다. 눈을 뜨니 회복실이었다.
간호사로부터 난자 스물아홉개가 채취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후 주의사항과 어떤 약이 처방되었고, 어떻게 복용해야하는지를 들었다. 난자가 정말 많이 채취된 바람에 역시나 가장 큰 걱정은 난소가 붓고, 복수가 차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항생제 외에 약 한 가지가 더 처방되었다. 물보다 이온음료를 많이, 하루에 1L가량은 마셔야 한다는 권고사항을 들었고,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 즉시 내원하라는 말도 함께 들었다.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의사와 병원의 지시를 철저히 따른다는 것이다. 짝꿍도 혀를 내두를만큼, 부모님 말씀은 듣지 않을지언정 의사와 병원이 하는 말은 천금같이 지키고야 만다. 그러니 이번도 걱정없다. 별일은 없을 거다.
… 라고 생각했는데, 전날부터 빈속인 게 문제였는지 결국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에 멀미가 시작되어 집에 도착하자마자 헛구역질을 해버리고 말았다. 안색이 파리해져 짝꿍이나 나나 어찌나 걱정을 했는지.. 하지만 그 후로는 별일 없었다.
이제 일단은 배아 배양 결과를 들을 일만 남았다.
<요약>
- 처방약: 커버락틴 0.5mg × 8
- 처방내용: 취침 전 1알
- 금일 진료비
- 본인부담금: 489,972 (+ 짝꿍채취 36,300)
- 공단부담금: 873,713 (+ 짝꿍채취 84,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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