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자가주사 9일차
가을은 가을인가보다. 긴팔, 긴바지의 옷을 입고 다녀도 덜 덥다. 이런 날씨가 9월 말이 되어서야 오다니...
이상기후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아니, 사실 기후가 이상하든 말든 요 며칠 내 머릿속은 온통 주사뿐이었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주사를 놔야하고, 심지어 대부분 냉장보관이 필수다보니 어디 움직이려는 마음을 먹기도 쉽지 않았다. 때가 되면 울리는 알람과 하나씩 늘어가는 주사바늘 자국에 약간 기운 빠졌다.
병원에 방문하는 날은 30분 정도 일찍 도착하곤 하는데,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초음파를 통해 상태 확인도 해야하고, 시간 맞춰 도착해봐야 내 진료시간은 훨씬 뒤로 밀리니 차라리 일찍 도착하는 게 낫다는 것이 나의 생각.
오늘도 한 10분쯤 기다리니 내가 초음파찍을 차례가 왔다. 마치 공장과 같은 시스템이라고 어떤 이들은 말하는데, 익숙해 졌다. 한편으로는 편하다. 체계가 잡혀있다는 느낌이 주는 안도감이 있다. 이런 체계 속에서 움직인다 해도 초음파나 진료볼 때의 긴장감마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외의 것들에서 변수나 불편함을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초음파실에 들어섰다. 자라난 난포 개수나 크기가 지난번과 비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열 몇개쯤 세던 초음파진단의의 목소리가 늘어졌다. 하나, 둘, 셋, 넷, ... 커뮤니티나 카페에 가입하여 활동하지 않기 때문에 내 상태를 확인할 비교군이 없지만, 입이 떡 벌어질만큼 정도인 거 같긴 하다. 암튼 많았다. AMH 11이라는 수치가 이런 데서 빛을 발하는가 싶을 정도 로. 초음파 검사를 마치며 검진의가 한 마디 하셨다.
"복수가 찰까봐 걱정이네요."
내 생각도 그랬다. 그 정도의 개수면..
난소도 이미 부어있을테고, 복수가 안 찰 수 없다. 아무래도 이번 주기에 이식까지 하는 건 힘들겠지 싶었다.
초음파 검진을 끝내고 진료실 앞에서 대기했다. 내 앞으로는 이미 10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월요일이 라서 그런지 이곳저곳 사람이 어마어마했다. 담당의는 나를 보자마자 몸은 좀 괜찮냐며 물었다. 두통도 무기력감도 없었 다. 다만 배가 묵직하고, 팽만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딱 배란할 때 쯤 느껴지는 증상을 배로 느끼는 수준이었다.
"그래요, 배가 좀 묵직하실 거예요."라던 담당의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말인즉슨 난자를 키우는 주사(고날에프)는 주지 않을거다, 조기배란억제주사를 오늘 맞을 것이고 난포터뜨리는 주사를 처방할 건데 이 주사는 맞는 시간을 아주 잘 맞춰주셔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그러고 나서 일정을 설명해주는데 아무래도 내 예상이 맞았지 싶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식은 다음달로 넘긴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아무래도 난소도 많이 부을거고 복수도 찰 것 같아요. 복수 덜 차게 해주는 약도 처방해 드릴 겁니다. 이번 주기는 쉬었다가 다음 주기에 이식하는 게 좋겠어요."
예상했던 대로다. 담당의는 휴식을 잘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리도 다른 때보다 일찍할 것 같다 했고, 10월 중순 쯤 배아상태를 보자고 날짜를 잡아주긴 했지만 그 전에라도 혹시 많이 불편하면 병원으로 꼭 오라고도 했다. 순간 겁이 좀 났지 만, 아무렇지 않은 척 진료실을 나왔다. 그래도 매번 질문이 더 있으시냐고 묻는 담당의쌤 최고..(!)
진료실을 나와 간호사에게 주의사항을 한 번 더 들었다.
★10월 1일 오전 01시 30분★에 데카펩틸 0.1mg 4ea를 한꺼번에, 꼭 이 시간에 맞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채취 전날 밤부터 항생제도 먹어야했고, 채취 전날 밤 12시부터는 물도 안 되는 금식이었다. 생각해보니 얼추 주사를 맞고난 후 36시간 전에 채취를 하는 모양이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동공지진. 약간 멘탈이 나갔었던 것 같기도. 이후 병원에서 가니레버를 한 번 더 맞았고, 그 길로 상담실로 가 다시 한 번 유의사항을 들었다. 이제는 안내문을 보지 않고도 줄줄줄 외울 지경이 되었다.
<요약>
- 처방약: 가니레버 0.25mg (주사실에서 주사) / 데카펩틸 × 4ea (냉장보관)
- 처방내용: 10월 1일 오전 01:30 데카펩틸 모두 주사
- 금일 진료비
- 본인부담금: 44,710
- 공단부담금: 7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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